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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가 🖋 - 오페라 탄생의 선구자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by LINHEE 2021. 7. 12.

*오페라의 탄생 <오르페오>
1590년, 몬테베르디는 만토바의 곤차가 궁정에 가수이자 비올 주자로 취임했다. 1602년에는 곤차가 궁정 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만토바의 곤차가 가문은 피렌체 지방의 메디치, 밀라노 지방의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페라라 지방의 에스테 등 다른 위대한 귀족 가문과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낸 위대한 가문이다.
*곤차가 가문
곤차가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만토바 현에 있는 지명으로 곤차가 가문은 1328년부터 1708년까지 북부 이탈리아에 있는 만토바를 통치했던 귀족 가문이다. 1599년 그는 주인인 빈첸초 공과 함께 네델란드와 벨기에의 브뤼셀을 여행했다. 브뤼셀에서 약 한 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때 프랑스 악파와 음악과 친숙해지는 기회를 가졌다. 몬테베르디는 벤첸초 공의 명령으로 오페라 <오르페오>를 작곡했다. 이 오페라에서 그는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변화가 풍부한 관현악을 구사했다.
*<오르페오>의 주요 내용
<오프페오>의 줄거리는 오비디우스가 <변신 이야기>에 기록한 오르페우스 신화에 기초했다. 오르페우스는 아폴론과 무사이인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 아폴론으로부터 리라를 선물 받아 그것을 타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그는 어찌나 리라를 잘 탔는지 그의 음악을 듣고 매료되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맹수도 그의 곡을 듣고는 사나운 성질을 버리고 유순해져서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 그의 연주에 넋을 잃곤 했다. 뿐만 아니라 나무와 바위까지도 그 매력에 빠졌다. 나무는 그의 음악을 듣고 가지를 그에게 뻗었고, 바위는 부드러워지면서 그 딱딱함을 약간 늦추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결혼식을 올릴 때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혼인의 신인 히메나이오스도 참석했다. 그런데 히메나 이오스는 참석은 했지만, 아무런 축하 선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가 가진 횃불에서는 연기만 나와서 하객뿐만 아니라 신랑과 신부까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이 같은 불길한 징조가 있었던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치기의 눈에 띄었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말을 붙이려고 했다. 깜짝 놀란 에우리디케는 그를 피해 달아났다. 그런데 그녀는 달아나다가 그만 풀 속에 있던 뱀을 밟아 뱀에게 물려 죽는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슬픔을 말과 음악으로 하여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호소했다. 그뿐 아니라 지상의 공기를 호흡하는 모든 것에 호소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서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왕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는 리라로 연주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 지하 세계의 신들이시여, 당신들이 있는 이곳으로 우리 같은 생명이 있는 자들은 모두 오게 마련입니다. " 그런데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진실로 드리는 말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타르타로스의 비밀을 염탐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고, 뱀과 같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는 머리가 세대인 문지기 개 케르베로스와 힘을 겨루려고 온 것도 아닙니다. 저는 꽃다운 청춘으로 독사에 물려 뜻하지 않게 죽음을 당한 제 아내를 찾으러 왔습니다. 사랑이 저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사랑은 지상에 거주하는 우리들을 지배하는 전능의 신일뿐만 아니라 옛말이 옳다면 이곳에서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저는 공포가 충만한 이곳, 침묵과 유령의 나라에 맹세하면서 당신들에게 간청합니다. 에우리디케의 생명의 줄을 이어 주십시오 우리는 당신들이 있는 곳으로 분명히 오게 마련이지만, 조금 일찍 오거나 늦게 오는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저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수명을 다한 후에는 당연히 다인들의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원컨대 그녀를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만약 거절하신다면 저는 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도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두 사람의 죽음을 앞에 놓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이렇게 그가 애달프게 노래를 부르자 망령들까지도 눈물을 흘렸다.
탄탈로스는 목이 마른데도 한동안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았고, 익시온의 불바퀴도 잠시 정지했다. 독수리가 거인 티티오스의 살을 파먹다가 중지하였고, 다나오스의 딸들은 체로 물 푸던 일을 중지했다. 그리고 복수의 여신들의 양 볼이 눈물에 젖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연주를 들은 페르세포네는 그의 청을 거부할 수 없었고, 하데스 자신도 양보했다. 하데스는 부하들에게 에우리디케를 데려오라 명했다. 부하들이 데려온 에우리디케는 새로 들어온 망령들 사이에서 뱀에게 물린 발을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지상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하였지만 조건을 하나 붙였다. 그 조건은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오르페우스가 그녀를 돌아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조건을 수락한 오르페우스는 앞에 서고 에우리디케는 그의 뒤를 따르면서 어둡고 험한 지하 세계의 길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걸어 나왔다. 마침내 그들이 지상 세계로 나오는 바로 그때였다.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의 조건을 깜박 잊고 에우리디케가 아직도 자신의 뒤를 따라오나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그녀는 유령들에게 다시 끌려가게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에루리디케를 잡으려고 얼른 손을 내밀었지만 허공만 잡을 뿐이었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하세계로 끌려 들어가면서도 오르페우스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저도 모르게 저지를 실수를 탓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마지막 이별이군요 ! 안녕히" 그녀가 이렇게 말했지만 그 말소리 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오르페우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다시 한번 그녀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 하계로 갈 수 있도록 스틱스 강의 사공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사공은 건네주기를 거절했다. 오르페우스는 7일 동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강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하 세계의 신들의 잔인함을 통렬히 비난하면서, 자기 생각을 노래에 담아 바위와 산에 호소했다. 그러자 동물과 나무도 감동하여 그 큰 줄기를 흔들었다. 그 후 그는 여자를 멀리하고 그의 슬픈 불행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트라키아의 처녀들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그는 그녀들의 구혼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트라키아의 처녀들은 그에게 당한 모욕을 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오니소스의 제전에 참석하여 너무 흥분하여 정신을 잃은 오르페우스는 한 처녀가 발견하고 소리쳤다.
"여기 우리를 모욕시킨 사내가 있다" 그러자 처녀들은 그를향해 돌을 던졌다. 그러나 리라 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 돌들이 도달하자, 힘을 잃고 그대로 그의 발밑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처녀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러 리라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한 다음 돌을 던졌다. 오르페우스의 리라 소리는 처녀들의 고함소리에 파묻혔고, 오르페우스의 몸은 그녀들이 던진 돌에 맞아 피로 물들었다. 광란한 처녀들은 오르페우스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고 그의 머리랑 리라를 헤브로스 강에다 던져버렸다. 그러자 리라는 슬픈 노래를 속삭이는 듯 연주하며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갔고, 강의 둑도 슬픈 노래로 답을 했다. 그때 무시이의 여신들이 이를 발견하고는 갈기갈기 찢어진 그의 몸을 모아 레이베트라라는 곳에 묻어주었다. 그 후 레이베 트라에서는 밤 꾀꼬리가 그의 무덤에서 그리스와 다른 지방에서 우는 것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르페우스가 죽자,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한 제우스는 그의 리라를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그 별자리가 바로 거문고자리다.
전체 5막으로 만들어진 <오르페오>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오르페오>는 근대 오페라의 출발저므로 꼽히는 작품이 되었다. 1597년에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가 만들어진 이후 몇 편의 오페라가 선을 보였지만, 근대적인 개념의 오페라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으로 몬테베르디는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