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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음악의 아버지 하이든

LINHEE 2021. 8. 22. 15:19


클래식 음악이라고 말하면 오케스트라 연주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곡가, 고전주의 시대를 살았던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는 유명한 작곡가인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스승이었으며, 현재 독일 국가의 멜로디를 작곡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이든의 일생

하이든은 오스트리아에서 가난한 마차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뛰어나게 좋은 목소리 덕분에 성가대에 들어가 16세까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가난했던 집안의 형편 탓에, 음악학교에 진학하여 음악 공부를 하고자 했던 꿈은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만으로 열심히 독학으로 하여, 자신의 힘으로 성공을 한 작곡가입니다. 매사에 열심히 임하여 눈에 띄게 성실했던 하이든은 주위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 덕분에 모르친 백작의 집안에 취직하여 집안의 음악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모르친 백작 가문의 재정상태가 급격하게 기울게 됩니다. 또한 하이든은 모르친 백자가의 소개로 당시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가졌던 에스테르하지 가문(18-19세기 헝가리 명문 가문. 함스부르크가 에 정치가와 장군들을 배출한 권력과 재력을 가진 가문)에서 일하게 됩니다.
헝가리 출신인 부호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자극을 받아, 헝가리에 어마어마한 에스테르하지 별장을 지었습니다. 이 별장은 휴가철에 후작의 여름휴가를 위해 쓰이기도 했으며, 다른 귀족들을 초대하여 머물게 하면서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매일같이 열리던 귀족들의 파티에 음악이 빠질 수가 없었겠죠, 하이든 후작과 인연이 되어 에스테르하지 궁전의 음악을 책임지는 궁정악장으로 취직하였고 그곳에서 30년 가까이 일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든의 작품 대부분이 이곳에서 탄생을 했습니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일하며, 유럽의 귀족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그의 이름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의 각지로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특히 영국에서는 하이든을 초청하여 콘서트를 열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이 당시 탄생했던 작품이 바로 12곡의 런던 교향곡입니다. 1791년에서 1795년 사이에 작곡된 교향곡들이랍니다. 하이든은 77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클래식 작곡가들과 비교하자면 오래 살았던 작곡가중 한 명이었지요.
하이든의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고, 11년 후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는 하이든의 공적을 생각하여 그의 유해를 자신들의 가족묘지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장을 위해 무덤을 파헤쳐보니, 시신의 머리가 사라진채 몸만 덩그라니 남아있었습니다. 다들 충격을 먹었죠. 그들은 즉시 하이든의 두개골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비서가 그의 두개골을 영구 보존하며 연구하기 위해 가져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결국 하이든의 두개골을 다시 돌려주었는데, 알고보니 그가 돌려준 두개골은 하이든의 것이 아닌 타인의 시신에서 가지고 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하이든의 두개골을 흥정하여 다른 사람에게 더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 위해 이런 일을 버렸다고 하네요. 하이든의 머리는 이후 100년이 넘도록 유럽을 떠돌며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몸과 머리는 우여곡절 끝에 145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묘를 만들 때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의 기념묘를 만드는 행사에는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고, 모두가 하이든이 드디어 평안하게 잠들 수 있기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하이든의 작품

하이든이 살던 시대에는 교향곡, 즉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 인기를 많이 끌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노래가 아닌 악기로 연주하는 곡을 좋아하게 되었고 연주시간이 긴 곡들도 많이 작곡이 되었습니다. 하이든은 오케스트라 곡을 100곡이 넘게 작곡하고, 오케스트라 작품의 형식을 잘 정리했던 작곡가로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데요. 이번에는 그가 작곡한 수많은 작품중 두 개의 작품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놀람교향곡, 교향곡 제 94번 G장조 [놀람]

이 작품은 하이든이 영국에 초청을 받았을 때, 런던의 청중을 위해 작곡한 12곡의 런던 교향곡 중 한 곡입니다. 이곡은 런던의 많은 관객이 관람하는 콘서트홀에서 연주되었으며, 당시 공연은 오케스트라 연주 인원이 무려 60명이나 되는 큰 규모의 공연(에스테르 귀족을 위한 연주곡들은 대부분 13-16명의 연주자가 연주합니다)이었다고 합니다. 모두 4개의 악장으로 되어있는 이곡의 특징은 2악장에 있습니다. 2악장은 단조로운 선율의 멜로디를 매우 여리게 pp 연주하다가 갑자기 매우 크게, ff 연주하여 청중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하이든은 유머러스한 성격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평소 귀족들이 음악회에 와서 음악 감상을 하며 조는 경우가 많아, 그들을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 곡을 작곡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곡의 별명이 놀람인 것이지요. 실제로 연주회에 왔던 한 부인이 음악을 들으며 졸다가,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재미난 일화가 있기도 합니다.

고별 교향곡, 교향곡 제45번 F단조 [고별]

이곡에 대해서 알아보다 보면 하이든이 음악 활동을 하던 당시에 음악가의 사회적인 위치가 어땠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당시 음악가는 귀족에게 소속되어 음악을 담당하는 하인이었지요. 그리고 하이든은 이에 늘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가의 위치를 높이려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1772년 무척 더웠던 어느 여름. 에스테르 하지 후작은 자신의 별장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며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후작과 그의 가족에겐 더없이 행복한 여름휴가였지만 과연 당시 별장에서 일하던 고용인들은 어땠을까요? 쉬는 날 없이 매일 연주를 해야 했던 별장의 음악인들은 덥고 힘든 여름을 견디다 못해 하이든에게 불만을 표출합니다. "우리도 좀 쉬고 싶습니다!" 궁정 악장이었던 하이든은 어떻게 해야 후작에게 단원들의 불만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 고민 끝에 탄생각 곡이 바로 고별 교향곡입니다. 이 작품의 4악장은 왠지 모를 슬픈 선율로 음악이 시작되는데요. 이후 지휘자인 하이든의 지시에 따라, 연주하던 단원들이 한 사람씩 무대 위의 촛불을 끄고 퇴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하이든이 무대 위 어둠 속에서 조용히 악보를 접고 퇴장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과연 이 무대를 본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후작은 하이든의 기막힌 센스를 알아차리고 단원들 모두에게 휴가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원곡의 느낌을 살려 퇴장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한다네요.